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
오윤희 지음
불광출판사
2015. 8.17 초판 1쇄 발행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제정과 관련하여 신미대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신미대사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터에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라는 책이 발간되었음을 알고 서둘러 입수하여 읽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신미대사에 대한 언급이 생각보다 적어 실망이 앞섰지만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세종대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억불군주로서의 이미지가 확연히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저자는 조선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史實)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에 상반되는 사실(事實)을 은근히 주장하고 있다.
118쪽을 인용한다.
“태승니(汰僧尼)라는 조선의 혁명공약을 실천했던 세종. 젊어서는 억불이나 배불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자칭 타칭, 숭불의 임금, 이단의 임금으로 돌변했다. (중략)
상께서 영응대군의 집 동별궁에서 훙(薨 )하셨다. (중략)
성스러운 덕이 위대하여 사람들이 표현할 수조차 없었으니, 그때 해동의 요순이라 불렀다.
비록 혹 만년에 불사(佛事)를 들어 말하는 자들이 있지만, 향을 살라 예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끝과 시작을 바르게 했다.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1450) 2월 17일. 훙(薨)은 제후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천자의 죽음은 붕(崩)으로 표현한다.“
태승니(汰僧尼), 1392년 7월17일 태조가 수창궁(개성)에서 즉위한 날 사헌부에서 올린 상소문에 실린 혁명 후 꼭 해야 할 열 가지 일 중 아홉째 항목을 말한다.
즉, 승니(남녀 출가 수행자)를 도태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태조는 말한다. 승니를 배척하고 도태하는 일은 이제 막 개국의 시작이라 갑자기 시행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태승니라는 혁명공약도 미완의 공약으로 남게 되었던 것을 실천으로 옮긴 세종이다.
“『세종실록』의 맨 마지막 기사, 그리고 맨 마지막 구절이다.
‘해동의 요순과 만년의 불사’, 대구(對句)가 참으로 절묘하게 걸렸다.
끝과 시작을 바르게 했다 의 원문은 종시이정(終始以正)이다. (중략)
읽기에 따라서는 객관적인 평가 같기도 하고, 변호를 하려는 듯도 싶다. 그래도 뭔가 불만과 원망의 어감이 느껴진다. 그의 말마따나 세종은 어쨌든 향 살라 예불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략) ‘끝과 시작을 바르게 했다’에서 ‘바르다’는 말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 임금이 그렇게 끝까지 바른 길을 갔다면, 온 나라의 사림은 도대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저항했던 것일까? 입까지 닫고 고집을 부리던 늙은 임금, 도대체 그의 속셈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훌쩍 뛰어넘어 133쪽으로 가본다.
“세존 7년(1461)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교 책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고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이 나올 때마다 세조는 아버지 세종을 추억했다. 아버지와 함께 읽었던 책, 아버지가 번역하라고 일렀던 책,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훈, 아버지와 아들이 마주 앉아 불교 책을 함께 읽는 일···, 불사라고 할 것도 없겠다. 하지만 번역하고 출판하는 일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겠다는 뜻이다. 돈도 들고 힘도 든다. 불사도 이런 불사가 없다. 절이야 어디에나 있고, 절을 지은 임금도 어느 때나 있었다. 하지만 세종은 문자를 손수 만들었고, 그 문자를 가지고 불교 책을 우리말로 손수 번역했다. 희유한 일, 쉽지 못한 불사였다.”
이리하여 세종은 이단이 되었고 숭불의 말년을 지냈다. 그리고 적어도 세조까지 조선의 혁명공약 제9조는 유야무야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처음으로는 억불군주 세종이 말년에는 숭불로 돌아섰다는 사실이고, 그 다음으로는 조선의 정치를 이끌었던 주체는 누구였느냐는 의문이 난다.
조선은 과연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가?
조선을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이 선비정신이라고 한다면 과연 이들 선비집단이 조선을 제대로 정치하였다고 볼 수 있는가?
고려 왕정을 개혁한다고 혁명을 일으킨 정도전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이 공들여 쌓은 결과들이
고려와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여전히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신미대사의 역할에 대한 호기심은 더하면 더했지 수그러들지 않는다.
정도전이 지은 『불씨잡변』(佛氏雜辨)도 읽어보아야 하겠고 궁극적으로는 언해불전(彦解佛典)을 접하여 보는 기회도 가져 보고 싶다.
신미대사의 속세 친동생인 김수온의 글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도 빠뜨려서는 안 될 대상임은 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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