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각에 모셔지는 세 분은 누구인가.
원래는 지공, 나옹, 무학 세 분을 모셨다.
여말선초 불교계는 위의 세 분 화상에 의해 주도된다. 특히 세 분 중 가장 주도적이며 역할이 컸던 스님이 나옹스님이다. 나옹스님은 <청산은 나를 보고> 라는 선시(禪詩)를 지었고 남양주 회암사지박물관에 나옹스님과 관련한 유물과 기록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선종은 나옹 혜근을 중시조로 모시기에 이른다. 이런 점 때문에 조선의 사찰에 이분들을 모시는 삼성각이라는, 조사전과 같은 사당이 건립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승군의 최고 지도자였던 서산대사의 세력이 급성장하게 되고, 서산대사 계통에서 여러 법맥의 단일화를 시도하게 되는데 이때 왕사였던 나옹 혜근보다 태고 보우를 선택하게 되면서 세 분 화상의 입지가 흔들린다.
그리하여 자연히 삼화상은 점차 삼성각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서산대사는 이분들의 빈자리를 메우며, 조사와 같은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조계종의 중천조로 태고 보우를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서산대사 계통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와 도교에 의한 북극성과 칠성신앙 및 신선신앙, 그리고 산신과 용왕이라는 우리의 토속신앙과 인도의 전통신앙이 새롭게 대체하는 신앙체계로서 그 빈자리로 들어오게 되는데 결국 임진왜란 이후 급격하게 변모하는 사회의 제반 관습과 제도에 동반하여 삼성각의 주인도 새롭게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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