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서적

무신과 문신

essenssie 2014. 12. 17. 11:30








무신과 문신” Generals and scholars

에드워드 슐츠 지음

김 범 옮김

글항아리

2014

 

저자는 현재 해외 한국사 연구를 이끄는 대표적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한 사실에 우선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더구나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 암흑기로 인식되어 있는 고려 왕조 중반의 무신 집권기를 집중 조명한 책이라는 점에 나름의 충격과 신선함이 있다.

 

과연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 기술의 진실성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저간의 강좌에서 많이 접하고 있는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은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여 바로 잡자는 큰 흐름이 분명 있다고 느껴진다.

 

이 책을 읽고 이제껏 잘못 알았거나, 애써 밝히지 않으려는 기성 역사학자들의 편협된 역사 인식의 결과로 제대로 교육되지 못한 사유로 인하여, 몰랐던 내용을 제대로 알고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서문에 기술된 저자의 말을 일부 인용하여 본다.

 

고려 시대에 관련된 지식은 동아시아사의 윤곽을 그리는 데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책은 한국사 이외와도 관련이 있다. (중략) 12세기 이전 한국은 정치적·사회적 제도의 다수를 중국의 통치 형태에서 본받았다 1170년 이후 갑자기 무신이 흥기하면서 중국의 전범과는 거의 닮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나타난 제도적 혁신과 놀랄 만큼 비슷한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다

 

일본에서 무사층의 대두가 한국에서 무신의 흥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은 이 두 문화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무신집권기에 고려는 다양한 통치 형태를 실험했는데, 일부는 중국과 일본 전통 모두에서 발견되고 일부는 한국의 독창적인 제도였다.

 

일본은 중국의 모형과는 다른 전통을 실험하면서도 제도의 일부를 근본적으로 계속 개선한 반면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끝내 중국의 모형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독자적 전통 그리고 기존의 통치 개념에 도전한 시대인 무신 집권기 을 좀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 책이 나의 시선을 끌고 흥미를 가지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정적이고 암울하게만 생각하였던 무신집권기 (1170~1258) 90년간이 어쩌면 정치적·사회적으로 오늘날의 한국의 특징을 규정하는 전환기가 아니었을까. 저자의 관점은 일본은 동일한 역사 전환기를 개선하여슬기롭게 독창적인 제도로 승화할 수 있었는데 한국은 그러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문장이라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학자의 주장으로서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지대한 관심을 끈 내용이 있으니 바로 7무신 집권기의 불교.

무신불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무신 집권기 동안 한국 불교는 선종 禪宗

이전의 교종 敎宗을 뛰어 넘어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의 주류가 되게끔 하는 역사적 계기를 가져 왔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왜 한··일의 동양 3국 중 유독 한국에서만 선종이 대세를 이룰 수 있었을까는 의문은 의당 궁금한 사실이었는데 저자는 고려 중반의 무신 집권기가 그 답을 준다고 주장하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무신 집권기 이전의 고려 왕조는 그 지도 이념으로 교종을 중심으로 하였고 11세기 후반의 승려 이자 문종의 아들인 의천 (1055~1101) 으로 대변되는 교종은 천태종, 화엄종, 법상종을 두루 포함하며 세를 불렸는데 이는 왕족과 문반 지배층들에게 과도한 사회·정치·경제적 이익을 가져 왔고 이에 대한 규제가 무신 집권기 특히 최씨 집정 치하에서 자연 선종에게 더 많은 지원을 가져 오는 결과가 되었다.

 

선종은 무신의 이해와도 합치되었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무신들에게 참선의 단순함과 구원의 방법으로 참선을 강조하는 이 소박한 철학이 특별히 매력이 있었다. 또 마침 이 시대에 활동한 지눌 스님 (1158~1210) 은 선종을 개인의 수양만 추구하는 철학에서 사회 모든 대중의 수행을 추구하는 철학으로 변모시키며 사회·정치적으로 무인 집정에 대립각을 덜 세우는 선종의 포교에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최씨 정권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되 승려를 정치에서 배제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불교와 학문의 극적인 변화를 주도했고, 왕족과 문인이 지원한 교종에서 덜 정치 지향적인 선종으로 전환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 자양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종이 표방한 불교 교리는 평민과 지배층의 필요에 부합하는 철학을 형성하였으며 최충헌과

그 후계자 아래에서 위대한 동화자가 되어 배타주의를 비판하고, 돈오와 점수, 참선과 연구의 원칙을 융합한 혼합주의적 자세를 취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철학적 전환으로 불교는 사회의

모든 계층의 필요를 다루는 더욱 인기 있는 종교가 되었다.

 

무신과 문신 모두 선종을 공부하였으며 최씨 정권이 무신과 문신의 이해를 합치시켰듯이, 그것은 불교와 유교교리의 혼합을 촉진했다. 승려와 학자들은 함께 공부하였고 서로 가르쳤다.

이런 대화를 거쳐 불교와 유교 교리는 더욱 깊이 이해되었는데 이런 담론은 선종에 내재한

형이상학적인 인식을 제고해 조선왕조의 철학적 질문을 특징지은 신유학의 원리에 더욱 깊은

탐구의 기초를 놓았다.

 

조선 왕조 500년을 사상적으로 지배하였던 신유학의 씨는 고려 중반 무신 집권기에 선종의 발전과 함께 이렇게 심어져 그 싹이 자라났으니 항상 새롭게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느낌이 따라 올 것이라고 새삼 역사의 재인식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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