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사상

금강경 무득무설분 제7 발표 (2012.06.23 작성 내용 옮김)

essenssie 2014. 6. 19. 21:21

2012. 6. 23 토 

 

금강선원 만일수행결사 금강경 독송회의 정기 모임에서 많은 보살분들을 모시고 금강경  무득무설분 제7 에 대한 공부를 주도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제가 특별히 많이 알아서가 아니고 동참자들 중 순번으로 돌아 가며 하는 행사의 일환이지만 아무래도

주도하는 입장이다 보니 평소보다 공부를 많이 할 수 밖에는 없었고 발표 내용도 미리 준비하여 갔는데

여기에 그 발표 준비물을 그대로 옮겨 놓겠습니다.

 

無 得 無 設 分    第七

(얻을 것도 설할 것도 없다) 慧炬 스님  五家解

(얻음도 설함도 없다) 無比 스님

(얻은 바도 없고 설한 바도 없다) 尹乙順 재가불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萬日修行結社 金剛經讀誦會 圓光팀 팀장 圓光 신 홍식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내용이 금강경 7번째 무득무설분입니다.

발표를 위해 국내에 출판된 몇 종의 책을 살펴 보았는데 무득무설에 대한 번역이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在家佛者가 理解하기에는 (얻음도 說함도 없다) 또는 (얻은 바도 없고 說한 바도 없다)는 飜譯이 더 가슴에 와   닫는다고 봅니다.

 

다만. 五家解와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敎本을 포함한 대부분의 飜譯本이 (얻을 것도 說할 것도 없다)는 表現을 採擇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또는 미래에  金剛經을  受持 讀誦하며 日常 生活의 根本으로 삼겠다는 意志의 發現으로 볼 때에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있다고는 보지만 金剛經을 공부하여 부처님 당시의 말씀을 이해함에는 (얻은 바도 없고 說한 바도 없다)라는 표현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無得無說分은 얻은 바도 說한 바도 없다고 하여 最上의 智慧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무엇인지를 밝힌 분() 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6년 苦行 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하고 成道했다   見性했다 悟道했다라는 表現을 합니다. 이것은 바로이고 얻음을 의미하는데 왜 얻음이 없다라고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經을 말씀하셨고 이를 集大成한 八萬大藏經을 說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說함이 없다라고 하는 것일까요?

 

一見 보아 앞 뒤가 서로 맞지 않은 내용입니다.  분명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쳤다   할 수 있고 수많은 經을 說하셨다고 알고 있는 부처님 본인은 정작  無得 즉 아니야  나는 얻음이 없어’, 無說 즉 아니야 나는 설함이 없어라고 합니다.

 

佛者라면 누구나 否定할 수 없는 眞實인데 부처님은 왜 不便한 眞實을 말하시는     걸까요. 이러한 否定을 통하여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주시려 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금강경 공부를 통하여 배우고자 하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金剛經의 全般에 걸쳐 含蓄되어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참다운 性品, 참다운 眞理는 본래 텅 비어서 일체   相과 일체 法이 없다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라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그 모든 犧牲을 치르고 얻어 낸 것에 대해서 당신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를 살피면 이 부분에서 우리 衆生은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할지 答이 나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왜 부처님이신들 스스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부처님이신들 스스로 많은 말씀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고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는 부처님도, 어느 境地를 뛰어 넘은 분이시기는  하지만, 人間이시기에 內心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無得無說은 그만큼 무엇이든 所重하게 생각하고 行하되 相을 내지 말고 執着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金剛經에 있는 4개의 四句偈 中 如理實見分에 있는 第1 四句偈를 引用하여 보겠습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한편으로

無得無說分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本文에 充實하게 接近하여 달리 表現해 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두가지 質問을 하였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는가

說法한 것이 있는가

 

그런데 당신은 일체 얻은 바도 없고 說한 바도 없다하셨습니다.

 

최상의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데에는 정하여 놓은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因緣 따라 自由自在함을 말하였습니다.   衆生에게는 衆生의 法이 있고 부처에게는 부처의 法이 있고 畜生에게는 畜生의 法이 있듯이 一切 萬有는 나름대로의 法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法이 있기에 이 宇宙는 秩序를 가지고 돌아간다고.

 

金剛經 역시 應病與藥, 衆生의 病에 따라서 그에 適合한 處方을 내리고 藥을 베풀어 주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適用되는 定해진 法에 따른 處方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定해진 法이 없으므로 때에 따라 場所에 따라 衆生의 根機에 따라 여래께서 方便으로 說하신 法은 無窮無盡하여 다 取할 수 없으며, 다 說할 수 없으며, 法이 아니며 法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無爲法으로 無我의 境地에서 함이 없이 하는 法으로 出世間法을 말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說法 역시 모든 存在의 實像의 原理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그것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存在의 實像이 바로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바로 그 原理입니다. 그래서 제7분 無得無說分은 얻은 바도 없고 說한 바도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無得無說分은 이와 같이 그 내용은 짧지만 부처님 思想의 根本을 알게 하여 주는 深奧한 내용이 담겨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傾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質問이 있으신 분은 말씀하여 주십시오.